안디옥 교회의 세계 선교 기초 사도행전 13장은 신약 교회의 선교 역사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을 보여주는 핵심 장(章)이다. 이 이전까지 사도들은 주로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안디옥 교회를 통해 본격적인 세계 선교가 시작된다. 특히 장재형목사는 이 안디옥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강조하며, 현대의 교회가 본받아야 할 ‘세계 선교의 전초기지’로서 안디옥 교회를 자주 언급한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 땅에서 부흥과 확장을 이루었고, 바나바와 사울(바울)을 따로 세워 파송할 만큼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했다. 이 모습이 곧 오늘날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라는 것이다. 당시 안디옥은 무역이 번성한 대도시이자 문화의 교차로였다.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 지역으로 복음이 전해지면서, 유대인만이아니라 다양한 민족과 언어를 가진 이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 공동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 교회가 특별한 점은 ‘기도와 금식중’에 성령의 지시를 받고 바나바와 바울을 세계 선교를 위해 파송했다는 사실이다(행 13:2~3).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을 크게주목하며, 교회가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선교사와 사역자를 발굴·파송해 세계 곳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방선교뿐 아니라 후방선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곧 안디옥교회가 보여준 균형 잡힌 선교 모델과 맞닿아 있다. 이 안디옥교회가 향한 첫 번째 사역지는 구브로(사이프러스) 섬이었다. 그곳은 바나바와 마가(요한 마가)의 고향이었는데, 섬전체를 횡단하며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행전 13장 초반부에 묘사되어 있다. 바나바와 바울, 그리고 요한(마가)은 약 18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서 살라미에서 바보(바포스)까지, 일일이 복음을 전했다. 작은 섬 구브로에까지 복음이 전해짐으로써, 결국 그곳의 총독 세르기오 바울과 같은 지도층에까지 복음이 도달했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실을 언급하며 “나라 전체가 구원에이를 수 있고, 국가적 지도자까지 변화시키는 힘이 복음에 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는 교회가 작은 지역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 안에서도 적합한 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열매가 맺힌다는 가르침이다. 구브로 사역을 마친 바나바와 바울은 배를 타고 밤빌리아 버가(현재 터키 남단)로 이동한다. 여기서 문제는 함께했던 요한(마가)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행 13:13). 성경 본문은 이에 대해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마가가 떠난 문제로 인해 바나바와 바울 사이에 분쟁이 생기고, 나중에 둘은 갈라져서 각기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중요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인간적인 갈등은 아픔을 가져올 수 있지만, 그 갈등과 분쟁을 통해 선교의 지경이 넓어지고, 결과적으로 복음이 더 많은 땅에 전파되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한계를 드러내더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가 요한의 독립된 사역, 바울의 1차·2차 전도여행, 그리고 바나바의 또 다른 선교 행보로 이어지면서 복음이 빠르게 확산된다. 이렇게 버가를 거쳐서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른다(행 13:14). 이 지역 역시 이방 세계에 속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있던 회당이 존재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도착한 도시에서 먼저 유대인 회당을 방문했다고 기록한다. 본문에 따르면 “저희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행 13:14).” 바울이 늘 취한 전도 방식, 즉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유대인에게, 그리고 헬라인에게” 전해진다는 로마서 1장 16절의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접근을 두고 “자기백성을 먼저 돌아보고, 그 안에 잃어버린 양들을 회복하며, 그곳에서 준비된 일꾼을 발견해내는 것”이라 말한다. 실제로 초기 교회는 예루살렘 성전뿐 아니라 각지의 회당을 통해 복음 전파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장재형목사는 21세기에 이 ‘안디옥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안디옥교회가 기도로 출발해 기도로 행하고, 성령의 지시에 민감했기에 거대한 파송과 세계 선교가 가능했다면, 오늘날 교회 역시 깊은 기도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수라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메스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여 ‘발’이 아닌 인터넷, 미디어, 비즈니스 네트워크 등 새로운 선교 수단이 생겼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즉, 교회가 하나되어 전방선교와 후방선교를 균형 있게 감당해야 하며, 한편으로는 다양한 나라와 지역을 향해 파송하고, 또 한편으로는 본부 교회나 선교본부에서 기도와 재정·교육 지원을 탄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디옥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해 구브로와 소아시아(지금의 터키)로 떠나도록 이끈 장면은 결국 “작은 교회로부터 세계선교가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부흥도 규모나 재정, 그 외의 조건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지시’를 얼마나 잘 분별하고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장재형목사는 거듭 설파한다. 이러한 교회는 어떤 환경에 놓이든하나님이 친히 길을 열어 주신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 개인은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농경시대, 산업시대, 정보와 기술의 시대를 거쳤지만, 복음 전파의 목적과 열정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안디옥교회의 역사는 21세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성령의 음성에 깨어 있는 교회가 세상을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담대한 복음 전파와 핵심 메시지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안식일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를 얻는다(행 13:15). 당시는 회당장과 함께 예배드리는 회중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낭독하면, 외부에서 온 사람도 설교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바울은 이 기회를 놓치지않고 일어나 손짓하며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청중에게 강론했다(행 13:16).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단호한 태도’가 복음 전파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주목한다. 바울은 주저하거나 조심스러워하기보다, 이미 한껏 준비된 메시지를 담대히 전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대답할 것을 예비하라”고 한 말씀처럼, 바울은 늘 준비된 증인이었다. 바울의 설교 핵심은 이스라엘 역사를 언급하면서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그는 구약시대의 택하심, 애굽 노예생활에서의 해방, 광야 40년, 가나안 정복, 사사 시대, 사울 왕과 다윗 왕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기대해 온 참된 구원자가 예수라는 점을 짧고 명료하게 설파한다(행 13:17~23). 이 역사적 흐름 속에 예수님이 ‘다윗의씨’로 오셨고, 요한(세례 요한)이 그의 길을 예비했으며, 예루살렘 당국이 무지로 말미암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다는 복음의 사건을 선포했다(행 13:30).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에서 “복음 전파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은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왕이자 구주)과 그분의 부활 사건”이라고 말한다. 복음에는 윤리나 철학적 이야기가 중요하지만, 그것을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핵심임을 빼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 사람이 곧 메시야”라고 선포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라는 복음의 본질을 강력하게 제시하자, 회당 안팎의 청중들이 크게 움직였다. 이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같은 말씀을 듣기를 원했으며(행 13:42), 실제로 다음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다(행 13:44)”고 기록되어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언급하며, 전도의 성공 요인으로 “전파자가 복음의 핵심 메시지에 집중하고, 담대히 선포했을 때 영혼은 본능적으로 그 진리를 식별하고 목말라한다”라고 말한다. 사람의 영적 갈증과 진리 추구는 매우 깊고 강력하기 때문에, 전도자가 비굴하거나 위축된 자세로 접근하기보다,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준다(행 3:6 참조)’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당당히 선포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담대함을 유지할 수 있는가? 장재형목사는 그 비결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성령의 동행하심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셨다. 사도행전 전체가보여주듯, 성령이 임하시면 건물을 흔들고, 핍박을 돌파하며, 종국에는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퍼져나가는 역사가 일어난다. 둘째, 전도자의 정체성 확립이다. 바울은 예루살렘 당시 가장 촉망받던 율법학자 중 한 사람이었으나, 스데반을 죽이던 사건 이후예수님을 만나 결정적으로 회개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복음 증거에 내던졌다. 그 과정에서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19:21)”며, 세계 중심으로 복음을 가져가야 한다는 비전을 품고 살았다. 즉, 나의 인생 전체가 복음을 증언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분명히 인식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기회만 주어지면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담대한 복음 증거는 당대든 오늘날이든 복음 전파의 핵심 열쇠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글로벌네트워크, 비즈니스 기회가 크게 늘어났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농경시대와 산업시대를 지나 기술과 정보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표현한다. 이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먼 거리를 ‘발’로만 걸을 필요가 없다. 인터넷 영상, SNS, 비즈니스 미팅, 또는 온라인 강의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와 방식이 변해도, 최종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복음의 ‘핵심 메시지’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으며, 부활하심으로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다”는 선언이 뚜렷하게 전해질 때에, 영혼이 깨어나고 목마름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바울이 담대하게 선포한 결과, 비시디아 안디옥의 온 성이 마음을 열었다. 일부 유대인들은 시기로 인해 바울을 배척했지만, 이방인들은 그 말씀을 기뻐하며 찬송했다(행 13:48). 교회가 크고 작음을 떠나, 복음을 선포하는 공동체로 뚜렷하게 서 있을 때,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듣고 마음에 울림을 경험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영적인 직관”이라고 부르는데, 어린아이도, 학식이 깊은 어른도, 복음이 선포될 때 그것이 진정한 생명수인지 아닌지 본능적으로 느낀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는 “금과 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라는베드로의 선언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 사실 교회는 물질이나 권력을 제공할 수 없는 환경에 부딪히기 쉽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을 주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나눔의 가치가 교회를 살리고, 도시와 국가를 살리며, 궁극적으로 세계를 변혁시킨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담대함과 확신, 그리고 성령의 능력”임을 다시한번 역설한다. 이러한 확신 속에서 장재형목사가 진행하는 글로벌 선교 네트워크는 이미 수많은 나라에서 교회를 건립하고, 노회를 조직하며, 크고 작은 센터(미션센터, 비즈니스센터, 교육센터 등)를 통해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중이다. 교회가 부흥을 열망하면서도 막상 많은 인원을 수용할 예배처소나 교육 인프라가 없다면, 정작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주시더라도 수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건물을 짓거나 매입하는 일 자체도 결코 세속적인 행위가 아닌, 복음을 담대히 전하기 위한 선교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하며, 교회가 기도 가운데 단계적으로 확장할 때 하나님이 더욱 많은 영혼을 보내주신다고 가르친다. 결국 담대한 복음 전파와 핵심 메시지에 충실함으로써, 교회는 세상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간다. 이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복음을 전하다 보면 언제나 시기와 반대, 심지어는 핍박이 함께 따른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이 과정을 통해 도리어 복음이 더 멀리, 더 넓게 퍼져나갔다고 말한다. 예루살렘의 교권이 핍박을 가하자 복음이 사마리아, 이방 땅으로 옮겨 갔고(행 8장),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일부 유대인들이 시기하자 오히려 이방인들이 기쁨으로 복음을 받았다(행 13장). 그러므로 담대함은단순히 무모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믿음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진한다”는 결단이 합쳐져서 나온다. 시기와 핍박 속에서의 기쁨과 성령 충만 사도행전 13장의 후반부가 보여주는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복음 전파에 대한 반대와 시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기쁨과 성령 충만’이다.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자, 일부 유대인들은 시기로 인해 바울의 말에 비방을 퍼붓고, 바울과 바나바를 적극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한다(행 13: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은 기뻐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라는 구절처럼, 오히려 반대와 핍박이 클수록 복음은 더 선명해지고, 준비된 영혼들은말씀을 붙잡게 된다. 이는 교회 역사에서 반복되는 패턴이기도 하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건에서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행 13:51)’ 다른 도시로 향하는 바울과 바나바의 태도에 주목한다. “너희가복음을 거부하면, 우리는 과감히 떠나 더 열린 문으로 나아간다”는 선언이다. 모든 사람을 살리려 노력하지만, 끊임없이 회피하고 배척하는 이들 앞에서는 미련을 두기보다 신발의 먼지를 털고, 다음 지역으로 전진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태도가 비인간적이거나 냉정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원리다. 복음은 자발적인 수용이 전제되며, 억지로 강요하거나 간청해서 얻어지는 열매는 오래가지 못한다. 또한 “시기하는 자들로 인해 선교가 막히는 게 아니라, 그 핍박으로 인해 더넓은 문이 열린다”고 본문은 강조한다. 결국 그 결과를 13장 마지막 절이 잘 보여준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행 13:52).” 바울과 바나바가 쫓겨나서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제자들의 영혼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이유는 무엇인가? 복음이 온 성에 전파되었고, 이방인 중에 상당수가 예수님을 영접했으며, 새롭게 제자로 세워진 이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비시디아 안디옥뿐 아니라주변 지역으로도 복음이 흘러갔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전도의 가장 큰 보상은 물질적 성공이 아니라, 구원받는 영혼들을 보는 기쁨과 그때 함께하는 성령의 충만함”이라고 말한다. 현대 교회도 마찬가지다. 복음을 전할수록 오해나 반발, 혹은 타 종교나 세속 문화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그것이 거세질수록마음이 약해지기 쉽지만, 오히려 그 상황에서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제자의 삶이다. 이는 곧 로마서 8장 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장재형목사는 “작은 갈등과 고난이 오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우리가 더 넓은 지경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격려한다. 이와 유사한 원리가 사도행전 8장에도 드러난다. 예루살렘 교회가 무섭게 일어난 핍박으로 인해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 결과적으로 사마리아, 아시아, 그리고 후에 유럽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결실을 거둔다.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구약의 요셉 이야기도마찬가지다. 형들의 질투와 미움으로 인해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결국 형제들과 애굽 전체를 구원하는 통로가 된 것처럼, 바울과 바나바 역시도 시기와 배척을 통해 이방인에게 복음이 들어갈 길을 열었다. 그래서 장재형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채색 옷을 입은 자는 누구나 시기를 당하기 마련”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결국 하나님이 더 큰 구원을 이루신다고 본문을 인용해 해석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음 전파에 대한 바울의 애착과 집념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지 않을 때마다 ‘신발의 먼지를 턴다’고 선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유대인 회당을 찾았다(행 14장, 17장, 19장 등). 유대인들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문이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끝까지 찾은 것이다. 다만 특정 지역이나 시점에서 심한 반대를 받으면, 굳이 거기에 매여 있지않고 더 ‘열린 문’을 찾아 나섰다. 장재형목사는 이 태도를 선교 현장에서 매우 중요하게 소개한다. “어디선가 문이 닫히면, 다른어딘가에서 더 큰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림을 통해 제자들의 기쁨과 성령 충만은 배가된다. 실제로 현대 선교 현장에서도 한 국가나 지역에서 종교적·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선교가 막히면, 다른 경로, 예컨대 비즈니스 혹은 교육을 통한 전도가 열리기도 하고, 이민자 커뮤니티나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통해 복음이 뻗어나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때때로 현지 정부나 지역 단체의 반대, 혹은 종교적 편견에 부딪히는 일이 생기지만, 결국 다른 길이 열리고 다른 지역에서 더많은 영혼이 회심하는 ‘기쁨의 열매’를 보게 된다고 간증한다. 이런 경험은 사도행전 13장의 원리를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행 13:52)”는 말씀은, 결국 복음이 편히 전해지는 ‘순풍’만 불 때가 아니라, 시기와 핍박이함께하는 ‘거센 바람’ 속에서도 성취된 결과다. 성령은 연약한 사람을 담대하게 하시고, 박해 앞에서도 기도와 찬양을 이끌어 내시며, 결국 복음이 더 멀리 퍼질 통로를 예비하신다. 장재형목사는 이 말씀을 통해 오늘날 수많은 지역 교회와 사역자가 용기를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혹은 여러 나라에 노회가 생겨날수록 오히려 더 많은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눌려 꿈을 접기보다, 끝까지 기도하며 빛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도리어 “핍박과 시기를 이긴 자들이 얻는 기쁨과성령 충만”을 누릴 것이며, 그것이 참된 교회의 힘이라고 가르친다. 장재형목사는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교회나 센터를 매입할 때, 종종 “미래가 없는 교단이나 교회가 건물을 매각한다”는 예시를든다. 반면 미래가 있는 교회는, “새로운 교회 건물을 차지하며 부흥의 꿈을 꾼다”는 것이다. 어느 교단이든, 희망을 잃고 다음세대를 바라보지 못하면 결국 축소되고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 원리는 사도행전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시기하고 질투했던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멸망에 가까운 길을 갔지만, 복음 앞에 마음 문을 열고 기쁨으로 받아들였던 이방인들은 오히려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교회가 기쁨과 성령 충만을 누린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미래지향적 태도와 하나님의 섭리가 만나는 지점이다. 결국 사도행전 13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복음 전파는 결코 순탄하지 않으며, 거기에 시기와 질투, 핍박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반대를 통해 더욱 인내하며,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를 오히려 확대해 나간다. 그리고그 선봉에 선 이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해진다. 21세기 교회도 동일한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세상 어느 곳이든, 비록 반대와핍박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항상 또 다른 길을 예비해 두셨고, 준비된 영혼들에게 복음이 들어가게 하신다. 이런 과정을 지켜볼 때, 우리 안에 참된 기쁨이 솟고, 성령의 역사가 더욱 생생해지는 법이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마지막 결론은 “안디옥교회가 모델이 되었듯, 오늘의 교회도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롭게 열린 문을 발견하면, 그 기회를 붙들어 복음을 나누고, 교회가 여러 분야(비즈니스, 교육, 미디어, 문화 등)로 뻗어나가도록 힘써야 한다. 그럴 때 사도행전이 기록했던 것처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행 13:49)”는 역사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재현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기쁨은 단순한 감정적 흥분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복음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이 누리는 영적 충만과 공동체적인 환희다. 예루살렘, 안디옥, 비시디아 안디옥, 그리고 지중해를 넘어 로마까지 뻗어 나갔던 선교의 발걸음이, 오늘날 일본, 중국,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 온 세계에 미치기를 바라는 것이 장재형목사가 지속적으로 선포하는 비전이다. 그렇게 교회는 끊임없이확장되고, 무수한 영혼들이 살아난다. 결국 사도행전이 보여준 원초적 교회의 역사야말로 오늘날 교회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 작은 교회라도 성령의 역사가 임하면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고, 크고 화려한 교회라도 성령 없이 형식만 남으면 스스로 무너진다. 그러므로 시기와 핍박이라는 외부적 도전과, 갈등과 분쟁이라는 내부적 문제 앞에서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 오직 담대한 믿음으로 복음의 핵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부지런히 전할 때, 안디옥교회처럼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여 결국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명은 바로 우리 시대, 우리의 교회가 이어가야 할 지상명령이기도하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해온 이러한 메시지와 비전이, 21세기 글로벌 사회 속에서 계속 빛을 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온 세상으로 뻗어 나아가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