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중에도 누리는 소망 – 장재형

1.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누리는 평화와 은혜

장재형(장다윗) 목사는 로마서 5장 3절부터 5절에 이르기 전에 먼저 1절과 2절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로마서 5장 1절과 2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어떤 혜택을 누리게 되는지를 보여주는데, 1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하며, 이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신자가 과거의 죄책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죄책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던 인간이 이제는 그 죄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의 첫 번째 복”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책을 벗어던지게 된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지는 화평, 곧 하나님의 마음과 동행할 수 있게 되는 평화를 가리킨다. 그렇게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는 전제 위에,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얻은 이 ‘화평의 복’을 선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어서 로마서 5장 2절의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라는 구절에 주목한다. 여기서 “은혜에 들어감”이라는 것은 죄 가운데 있었던 인간이 감히 들어갈 수 없었던 영역, 즉 지성소 같은 거룩한 공간에 담대히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를 설명하면서 장재형 목사는 “죄인이던 우리가 자유케 되었다면, 그다음에는 어전으로,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구약 시대에는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 성전 체계에서 아무나 함부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깨끗함을 얻었으므로, 그분의 임재 앞으로 마음껏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이 은혜에 들어감’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믿음을 통해 도달하게 된 이 거룩한 영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한다. 장재형 목사는 “좁디좁은 항구에서 배가 나와 광활한 바다로 나아간다는 느낌도 좋지만, 오히려 거센 파도가 치던 바다에서 도리어 평온한 항구로 돌아와 닻을 내리는 안정감이 더 정확한 비유일 수 있다”고도 덧붙인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책에 눌려 있던 상태를 벗어나 하나님의 평화 안에 거하게 되고, 나아가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며 즐거워하는 삶이 된다.

장재형 목사는 하지만, 로마서 5장 1, 2절에 나타나는 이 놀라운 혜택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곧이어 로마서 5장 3절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라는 표현으로 말을 시작하는데, 이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누리는 복이 아직 더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바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는 선언이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고, 이제 죄에서 벗어나 참된 평화를 얻었으므로 모든 삶이 탄탄대로처럼 보일 것 같지만, 실상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수많은 환난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바울은 분명히 안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이제부터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예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고, 사도행전 14장 22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이는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갈등과 고통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들에게 환난은 환난 그 자체로 끝나고 말지만, 믿음 안에 있는 자들에게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궁극적으로 더욱 견고한 소망을 이루게 한다는 진리이다.

바울은 로마서 5장 3절에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고 단언한다. 세상의 시선에서 보면 환난은 결코 즐거워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여기 담긴 깊은 역설을 주목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에게 환난은 더 이상 파멸이나 절망이 아니라, 그 안에 인내를 빚어내고, 결국 우리를 단련하여 더 높은 단계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에서 씨 뿌리는 비유를 인용하기도 한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가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순간 만에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처럼, 신앙의 길 역시 인내의 시간이 있어야 완성된다. 그래서 로마서 5장 4절에서 바울이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할 때, 그 배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점진적으로 단련시키시고 더 큰 영광으로 인도하신다는 섭리가 깔려 있다.

그렇다면 환난은 헛된 것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성경 여러 곳에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야고보서 1장2절에서 사도 야고보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한다. 이는 현재 당하는 시험이 아무 의미 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세워 온전케 만들어 간다는 확신에서 나온 말이다. 또 베드로전서 1장 6절, 7절에서도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는 말씀으로 환난 가운데 받는 연단을 귀히 여겨야 함을 역설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을 풀어서 “고난이 깊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므로 환난은 결국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훈련”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장재형 목사가 주목하는 바는 환난 자체가 귀하다는 것이 아니다. 환난이 우리를 살려내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믿음 안에서, 이미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에게 임하는 환난이 그를 더 성숙케 하고, 더욱더 소망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이다. 고린도후서 1장에서 바울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에 대해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라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바울이 거기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발견하고,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라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는다. 장재형 목사는 “바울이 말한 환난은 단지 바울 한 사람이 겪은 극한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극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믿는 자 안에 있는 환난이라 함은 결국 하나님의 greater plan, 하나님의 더 큰 계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과정”이라고 요약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렇게, 로마서 5장 3절 이하에서 말하는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는 선언을 두고 결코 단순한 낙관론이나 무감각한 태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성경이 말하는 ‘환난 중에도 기뻐함’은 현실의 어려움과 슬픔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궁극적으로 우리는 소망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현재의 환난은 그 소망으로 가는 길에 필수적인 과정’임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이 “가장 진실하고, 가장 현실적인 기쁨”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적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어도,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에게 보장된 영광의 미래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한 확신이 현재를 압도하기 때문에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죄성은 이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장재형 목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정함, 감사하지 않는 마음”이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정말로 법정에서 무죄가 선포된 자가 환호하고 기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영적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은” 은혜가 그보다 훨씬 더 놀라운 사건임에도 우리는 쉽게 무덤덤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재형 목사는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무정한 세대’를 말씀하신 장면을 언급한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는 비유는, 주의 은혜와 사랑이 부어져도 감격하지 않고, 회개할 상황이 와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꼬집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서 5장의 결론은 분명하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는 사실 자체가 의롭다 함을 받은 자에게는 분명한 특징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난 중에도 누리는 이 기쁨이야말로 구원받은 자의 증거요, 하나님과 화평한 자의 표지”라고 장재형 목사는 거듭 강조한다.

2. 환난 속의 인내와 연단, 그리고 소망

장재형 목사는 로마서 5장 3절에서 5절까지의 핵심은 “환난 → 인내 → 연단 → 소망”이라는 구도로 압축된다고 본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실제 신앙 여정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역동적 구조다. 단순히 “환난이 오면 소망을 갖는다”라는 생략된 도식이 아니라, 중간에 ‘인내’와 ‘연단’이라는 중요한 단계를 반드시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을 때, 바울의 말은 아무 환난이나 다 소망으로 연결된다는 뜻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이 과정을 받아들이고 걸어가는 자에게 주어진 결과임을 시사한다.

인내는 쉽게 말해 ‘참고 견디는 것’이지만, 성경적 인내는 수동적이고 굴욕적 형태와 다르다. 장재형 목사는 “인내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씨 뿌리는 농부가 인내로 결실을 기다리듯, 기독교 신앙에서도 “비록 지금 당장은 눈앞이 막혀 있어도, 하나님이 주실 결실을 바라보며 기다린다”는 태도가 인내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참으며 소망을 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브리서 11장 1절)이기에, 그 ‘바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기꺼이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을 “미래의 영광이 현재를 삼켜버린다”라고 표현한다. 즉,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면 지금의 고난이 너무나도 가볍고 일시적이라는 사실에 눈이 열리면, 사람은 고난을 고난으로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 필요한 과정”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인내를 통해 얻는 또 다른 유익은 바로 ‘연단’이다. 장재형 목사는 연단을 설명하면서 “흙에서 금을 정련해내듯, 우리의 믿음도 때로는 풀무불과 같은 시련을 통해 모든 찌꺼기가 빠져나가야 진정한 정금이 된다”고 강조한다. 베드로전서 1장 6절, 7절에서 말하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는 본문도 같은 뜻이다. 또한 히브리서 12장 8절 이하에서 징계받는 자가 친아들이고, 징계 없는 자는 사생자라는 강한 어조의 경고가 나오는데, 이는 ‘사랑하는 자이기에 하나님이 반드시 연단을 주신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우리는 연단 자체가 괴롭다고 피하려 하지만, 사실 그 연단이야말로 우리를 진짜 아들로 자라나게 하는 하나님의 필연적 훈련 방식”이라며, “신앙에 깊이와 성숙이 생기려면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이 뜨거운 불길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단은 우리를 더욱 정결하고 단단하게 한다. 장재형 목사는 “떫은감이 익어 달아지고, 비린 생선이 적절한 조리 과정을 거쳐 맛있는 음식이 되듯, 우리 내면에 있는 거친 부분들이 계속해서 제거되고 다듬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 안에 있는 혈기와 분노와 무절제함 등이 점차 하나님 앞에서 순화되고 정화되어야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서게 된다는 것이다. 모세를 예로 들어 미디안 광야 40년의 연단이 없었다면 민족의 지도자로서 그는 제대로 쓰임받지 못했을 것임을 상기시키며, “광야에서 양을 치는 40년의 시간 속에서 모세의 혈기와 폭력성이 연단을 통해 부드럽고 유순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기에 그는 출애굽을 감당할 준비가 된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다만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치는’ 혈기를 끝내 이기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일화 역시 회고하며, 사람이 끝까지 참고 견디지 못할 때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도 경고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궁극적인 결실이 바로 ‘소망’이다. 믿음 안에서 환난을 겪고, 그 환난이 우리를 인내케 하고, 인내가 우리를 단련하여 결국엔 소망으로 인도한다. 장재형 목사는 “소망이라는 말이 막연한 희망적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의 영광에 대한 확신”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신앙인의 삶을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로마서 5장 5절에서 말하는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이라는 선언에 특별히 주목한다. 당시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교회가 핍박받고, 여러 지도자들이 순교당하는 상황에서 겉으로 보기엔 소망이란 전혀 없게 보였을 수 있다. 심지어 디모데후서에 보면 바울이 투옥된 후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아픔도 있었고, 그를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담대히 “소망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소망은 사람이 만들어낸 불확실한 환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을 두고 “성령은 우리를 단지 감정적으로 고양시키는 어떤 힘이 아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셔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사랑을 기억하고 붙들 수 있게 하시는 분”이라고 역설한다. 세상의 어려움과 환난 앞에서 더는 물러서지 않게 만드는 힘, 그 가장 강력한 동기가 바로 성령으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내가 감옥에 갇힌 것은 부끄러움일 수 있으나,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믿는 이를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가 능히 지키실 줄 믿기 때문이다”라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었다. 장재형 목사는 디모데후서에서 “너는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바울의 탄원에 주목하며, 환난을 맞닥뜨린 목회자, 혹은 환난 속의 교회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복음이 세상에서 당장 화려한 영광을 보장하지 않을 때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끝까지 우리를 붙드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결국 로마서 5장 1절부터 5절까지가 펼쳐내는 그림은 다음과 같은 귀결점에 이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은즉”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하여, 죄책의 굴레와 단절하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더 나아가 은혜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기쁨을 얻는다. 그리고 일상 속에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환난조차 그리스도 안에서는 인내와 연단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소망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 마지막으로 그 소망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분명한 보증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재형 목사는 로마서 5장 5절을 가리켜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결정적 실체가 ‘성령으로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것이 없다면 환난은 여전히 환난이고, 인내는 단지 고통스러운 버팀일 뿐이지만, 이 사랑이 부어지기에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고, 불가능해 보이는 길도 걸어갈 수 있게 된다”고 결론지었다.

나아가 이 소망의 토대를 “이미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데서 찾는 점도 중요하다. 장재형 목사는“우리의 구원과 의롭다 함이 흔들리지 않는 기초가 되기에, 어떤 시련도 궁극적 정죄나 파멸이 될 수 없다”는 바울의 확신을 부각한다. 만약 우리가 아직 죄책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환난은 하나님이 내리는 형벌처럼 여겨질 것이고, 그 속에서 인내와 연단을 배우는 대신 오히려 패배감과 자포자기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로마서 5장 1절에서 바울이 단언했듯이,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으므로, 어떤 환난도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나은 것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연단하시는 과정임을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환난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완전히 달라진다. 장재형 목사는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기쁨을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고, 그 기쁨이 우리의 현재 고난과 영광스러운 미래를 관통하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결국 로마서 5장 3절 이하의 본문에 담긴 핵심 메시지는 이렇다. “너희에게 환난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라. 그 환난은 곧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는 너희를 연단하며, 연단은 마침내 너희를 더 큰 소망의 자리로 이끈다. 그리고 그 소망은 결코 부끄러운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너희 마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재형 목사는 “우리 신앙인들이 일상의 삶에서 바꿔야 할 시선”이 있다고 덧붙인다. 세상적 시각은 환난을 재앙으로만 본다. 그러나 믿음의 시각은 환난을 통한 단련을 본다. 이 근본적인 해석의 전환이 우리로 하여금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삶’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야말로 세상과 구별된, 의롭다 칭함 받은 이들의 진정한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마지막으로, 로마서 5장 5절에서 말하는 성령의 부으심에 대해 강조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어떤 표적이나 은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증명된 하나님의 사랑을 전인격적으로 깨닫고 체험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환난과 시련이 엄습할 때, 그 사랑의 확신이 있으면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그 사랑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 “자칫 멀리 계셔 보이는 하나님을 실제로 느끼며, 복음의 진수가 삶 속에서 뿌리내리게 하는 요소”라고 설명한다. 만약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제대로 부어져 있지 않다면, 교리에 대한 지식이나 신앙의 형태가 아무리 근엄해 보여도 환난 앞에서 쉽게 요동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다면, 바울이 감옥에서조차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가 믿는 이를 내가 알고, 또 내가 의탁한 것을 능히 지키실 줄 확신한다”고 노래한 것처럼, 우리 역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장재형 목사는 실제 성도들의 경험을 나누기를 즐겨한다. 그가 목회하는 지역교회에서도, 수많은 환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흔들렸다. 때로는 재정의 위기, 사람들 간의 갈등, 세상의 비난 등 다양한 형태의 “좁은 길”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하나님께서 또다른 문을 여실 것이다”라는 확신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끝까지 참아야 하는 가장 혹독한 시간에, 오히려 소망이 더욱 또렷해진다”는 증언을 교인들끼리 공유하며 함께 견딘 결과, 놀라운 회복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을 여러 번 목도했다. 이런 간증들은 바울이 갈파한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는 말씀을 실제로 증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현실 속에 나타난 결과가 되면, 또 한 번 “소망은 결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목회 현장에서 마주하는 환난이 결코 만만치 않지만, 그것이 교회를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되레 교회를 단련하고, 교인들의 믿음을 정금같이 빚어내는 기회가 되곤 했다”고 회고한다.

결국 이것이 신앙의 역설이다. 환난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 것 같지만, 의롭다 함을 받은 자에게 그 환난은 인내를 이루게 하고, 인내는 연단을 통하여 우리 믿음에서 찌꺼기를 빼내며, 끝내 더 큰 소망과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그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이 이미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심령에 부어주신 사랑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재형 목사는 “이처럼 큰 은혜와 사랑 안에서 사는 우리가 어찌 환난을 환난으로만 여기겠는가. 도리어 그 환난을 뛰어넘어 더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되니, 슬픔 중에도 참된 기쁨이 있고, 마음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평강이 있는 것”이라 요약한다.

이제 본문의 흐름을 정리하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과거 죄책에서 벗어나 평화를 얻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희망 속에 산다. 동시에 삶의 환경 속에서 수많은 환난이 닥쳐오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낙담시키거나 폐허로 몰아넣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내와 연단을 통해 궁극적으로 소망에 이르도록 돕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그 소망은 헛되지 않다. 바로 성령으로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실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어떤 환난도, 어떤 시련도 우리를 영원한 파멸로 몰고 가지 못한다. 도리어 하나님의 자녀라서 받는 필연적 과정이며, 주께서 우리를 고난으로 몰아넣으실 때는 반드시 위로하시고 돌이켜 주시며, 새길을 열어주시기 위한 선한 뜻이 있다.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환난 중에도 우리는 즐거워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렇듯 장재형 목사는 로마서 5장 3절부터 5절을 해석함에 있어, 성도들의 실제 생활에 밀접하게 적용되는 진리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한다. “매일 겪는 수많은 문제 가운데, 믿음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그는 분명한 해답을 제시한다. 곧,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그 관계 안에서 어떤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필연적으로 인내와 연단을 거쳐 더 확고한 소망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소망은 부끄러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단지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이나 착각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는 실제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5장 전반부에서 드러나는 메시지는, 신앙인이 가는 길은 “영광만을 바라보며 살기에 모든 것이 장밋빛이 된다”는 식의 달콤한 환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광야와 같은 삶을 통과해야 하고, 때론 갇히고 멸시받는 상황도 닥친다. 그럼에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내적인 충만함, 곧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어떤 형편에서도 요동치 않는 평강”을 누리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고, 결코 중도에 주저앉거나 부끄러워하며 돌아서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복음의 능력이요, 장재형 목사가 “이론을 넘어 체험으로 붙잡아야 할 진리”라고 강조하는 핵심이다.

환난이 우리를 찾아올 때, 세상은 “모든 게 실패로 끝났다”고 쉽게 말하지만, 믿는 자에게 환난은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더 온전케 하시려고 때때로 ‘광야’로 이끄신다고 말한다. 이때 광야는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를 더 깊이 체험하는 자리이자, 내 안에 있는 불순물을 걷어내는 연단의 자리가 되곤 한다. 결국 그렇게 버려진 곳처럼 보이는 광야 한복판에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길”을 배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더 깊어진 믿음, 그리고 결코 부끄러워지지 않는 소망”이다. 이것이 로마서 5장의 원리다.

나아가 장재형 목사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이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는 유토피아적 언어’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실제 환난을 대면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환난이 닥쳤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나?”라고 불평만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더 깊은 뜻이 여기 있을 것”이라며 인내의 태도로 임하는가, 그 차이가 실천의 갈림길이 된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불평과 절망에 빠져드는 건 세상의 논리이고, 믿음은 그 절망 속에서 소망을 찾아 헤매는 게 아니라 이미 속사람 안에 심겨진 성령의 역사로 확신 있게 전진하는 것이다. 바울도 감옥에서 고난을 받는 동안 결코 부끄러워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성도인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다’는 사실로 인해 두려움을 떨쳐내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기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장재형 목사가 로마서 5장 1절부터 5절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첫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죄책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며,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감으로 참된 안식과 영광의 기쁨을 바라게 된다. 둘째, 그러나 그 길에는 환난이 없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삶 역시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고, 사도행전의 교회나 바울처럼 수많은 시험과 박해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 환난은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를 길러주고, 인내를 통해 연단이 일어나며, 그 연단은 견고한 소망을 낳는다. 그리고 이 소망이 결코 헛되지 않은 이유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 부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는 바울의 말은 결코 공허한 구호가 아니다.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실제 능력이기에, 믿음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기쁨이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 로마서 5장의 원리를 가르치며, “우리 각 사람의 삶에서 진짜 환난을 만날 때, 내가 그 환난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내 신앙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만일 환난이 닥칠 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나?”라고 좌절한다면, 아직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의 확신이 뚜렷하지 않거나,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누리지 못하는 상태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환난도 주의 섭리 가운데 있다. 이것이 인내를 낳고, 또 연단을 거쳐 더 큰 소망을 얻게 하실 것이다”라고 확신하며 기도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로마서 5장에서 말하는 구원받은 자의 삶의 열매가 실제로 나타날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두고“사도 바울이 직접 증언한 길,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목숨 걸고 걸어간 길”이라 말하며, 그 길이야말로 진정한 제자도의 길이라고 역설한다.

로마서 5장 3절 이하가 보여주는 복음의 능력은 단순한 감정의 위로 이상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견고한 실제’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어졌다는 사실은, 환난과 시련이 몰려와도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위로와 기쁨의 샘이 마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는 삶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장재형 목사는 “이 말씀을 계속 묵상하다 보면, 과연 누가 우리를 이 사랑에서 끊을 수 있을까 하는 바울의 다른 고백(로마서 8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진정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어려움도 궁극적 파멸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더 단단한 믿음과 확고한 소망으로 이어지는 길이 된다”고 결론짓는다.

요컨대, 장재형 목사가 이 본문을 강해하는 중심 의도는, 신자들이 ‘이미 얻은 구원의 기쁨과 환난 속에서 맞닥뜨리는 단련의 과정을 결코 분리해서 보지 말라’는 것이다. 환난을 무조건 피하려 하거나, 환난을 만나면 신앙의 본질이 흔들리는 이들에게 로마서 5장 3절부터 5절은 분명하게 말한다. “그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그리고 그 소망이 결코 너희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사랑의 확신이야말로 진정한 기쁨과 담대함을 주는 뿌리이다. 이 말씀을 붙드는 신자들은 환난도, 두려움도, 절망도 더 이상 궁극적 좌절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이미 구원받은 자의 지위를 얻었으니, 마음을 다해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더 큰 소망으로 인도해 가시는지를 경험하라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펼쳐 보이는 ‘환난 중에 즐거워한다’는 이 말씀은, 장재형 목사가 늘 강조해온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전제될 때만 가능해진다. 우리가 넉넉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는, 때때로 우리를 알 수 없는 길로 이끄시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믿기에 우리는 두렵지 않다. 그 믿음이 환난을 통과하면서 인내를 낳고, 인내의 열매가 연단을 거쳐 결국 소망을 이루게 될 때, 우리는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인간적인 자랑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어떤 환난도 즐거워한다’는 놀라운 선언이 우리 삶에 실제로 성취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능력이다.

이렇듯, 장재형 목사는 로마서 5장 3절부터 5절의 강해를 통해 구원받은 자의 현재적 기쁨과 미래적 소망, 그리고 그 가운데 끼어 있는 환난과 연단의 긴장을 한눈에 조망하게 해준다. “예수 믿으면 다 잘된다”는 피상적 해석이 아니라, “예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에게 있어 환난은 더 이상 형벌이 아니라 성장의 도구”라는 성경적 해석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역설한다. 세상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우리의 눈앞에 거센 파도가 몰려오든, 이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지닌 신자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고난 속에서 더 견고해지고, 더 성숙해져 가며, 끝내는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로마서 5장 3절부터 5절에서 발견되는 메시지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근거는 단지 낙관적 태도나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받은 구원의 확신과 성령의 부으심으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있음을 알려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구원받은 자의 특권”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이 특권을 실제로 누리지 못한다면, 이는 결코 복음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부족과 말씀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반대로, 복음을 제대로 알고 믿음 위에 선 자는, 어떤 환난도 더 이상 두렵지 않고, 그 환난이야말로 미래의 영광을 예비하는 과정임을 알고 기쁘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장재형 목사가 일관되게 전해온 로마서 5장 3-5절 강해의 골자다.

이로써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는 주제에 관한 로마서 5장 3절부터 5절의 메시지가,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실제 신앙의 안내서가 된다는 점이 선명해진다. 장재형 목사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듯, 의롭다 함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한다”는 바울의 외침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그 소망은 결코 부끄러운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가득 부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로마서 5장의 구원론과 성령론이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완전한 기쁨과 담대함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귀한 복음을 믿음으로 붙드는 자에게, 환난은 끝내 하나님의 더 큰 영광과 사랑을 맛보게 하는 길잡이가 된다. 이것이 장재형 목사가 계속해서 역설하는, 그리고 로마서 5장 본문이 생생히 증언하는 복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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